경주 j717펜션 주변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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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펜션에서 자동차로 30분거리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인들은 신라가 곧 불국토라는 자부심과 불국토를 신라땅에 구현하고자 하는 염원이 간절했습니다. 신라인의 강한 신앙심은 발달한 과학 기술과 뛰어난 건축술, 예술적 감수성에 힘입어 현실화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 불국사이며, 토함산 정상부에 있는 석굴암은 전체적인 설계와 공간 배치에서 수학적인 비례 배분과 과학적인 자연통풍, 온도 및 습기조절, 예술적인 모든 조각의 완성도 등 여러방면으로 뛰어난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안압지(동궁과 월지)

펜션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

안압지는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궁궐 안에는 현재 중국 사천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의 12개 봉우리를 본따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고, 연못을 파고서 그 안에 전설 속의 해중선산인 봉래·방장·영주를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고서 꽃을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합니다. 이 연못은 바다를 상징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중심 건물을 임해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동궁 및 월지 유적은 1980년에 정화공사를 거쳐 신라 궁궐의 원지로 복원되었고, 3채의 누각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들을 참조하여 복원되었습니다. 그밖의 건물터는 주춧돌만 정연하게 확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습니다.

첨성대

펜션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

첨성대의 석재는 화강석인데 표면에 노출된 부분은 모두 다듬어져 있습니다. 석재의 개수는 종래 365개라고 하였으나 기단석까지의 포함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히 365개는 아닙니다. 이와 같은 구조로 총 높이가 9.51m가 되는데 홍사준은 사다리 세 개를 마련하여 한 개는 지상에서 중앙 창구까지, 한 개는 중앙 창구 안에서 내부의 제19·20단의 ‘井’자석까지 걸쳐서 정상의 ‘井’자석 안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오르내리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부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서 하늘을 관찰하는데 편리하였다고 합니다.

월정교

펜션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63-1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없어진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을 완료하였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문루 2층에는 출토된 유물과 교량의 건축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관을 설치하며,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과정 관련 영상도 상영합니다. 경주시의 신라 왕경 8대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 중에서 첫 번째로 완성된 월정교 복원사업은 이후 진행될 황룡사, 신라왕궁, 쪽샘지구, 신라방 등의 복원 정비공사에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계림숲

펜션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7,300㎡ 입니다. 물푸레나무·홰나무·휘추리나무·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며, 신라 왕성인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강 전설이 있는 숲입니다. 계림이라는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데서 연유되었으며, 후에 국명으로도 쓰였습니다. 신라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며, 100여 주의 고목과 1803년에 세운 비가 있습니다.

오릉

펜션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

신라 초기의 왕릉으로 시조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5명의 분묘라 전해집니다. 일명 사릉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명칭은 박혁거세가 승하 후 7일 만에 그 유체가 다섯 개로 되어 땅에 떨어졌으므로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와 방해하여 그대로 다섯 군데에다 매장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연유되었습니다. 능 입구의 홍살문을 세운 기둥은 원래 당간지주로 이곳에 담엄사가 있었다는 설과 일치합니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무대왕릉

펜션에서 자동차로 30분거리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완수한 뛰어난 군주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문무왕이 재위 21년만인 681년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의 유언은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입구에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으므로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능은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 가운데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연바위입니다. 남쪽으로 보다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썰물일 때만 보이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마치 호석처럼 보입니다.

김유신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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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묘는 지름이 30m에 달하는 원형의 큰 무덤입니다. 봉분 둘레에는 둘레돌을 두르고 그 외곽에는 바닥에 깐돌을 깔았으며,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둘레돌은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둘레돌과 같은 양식으로서 벽석·연헌석·연대석으로 짜여 있습니다. 둘레에는 95㎝ 높이의 탱주석을 세웠는데 소면석과 신상석을 교대로 배치하였습니다. 신상석은 모두 12개로 자상·축상·인상·묘상·진상·사상·오상· 미상·신상·유상·술상·해상 등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